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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정금녀
2004/9/13(월)
[새벽예배] 열왕기상 2장 5절 ~ 9절  

5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6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7절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8절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9절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다윗 왕이 이제 쇠약해져서 운명할 시간을 앞두고 그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고 있죠?  첫 번째 유언은 자기 자신이 걸어온 길,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살아온 길, 믿음으로 하나님을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랐던 길을 이 아들에게도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들에게 좋은 길을 알려주고자 하는 뜻도 있지만, 이것조차 그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 그에게 맡겨주신 모든 백성들을 비롯해서 그의 자녀손손 대대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믿고 하나님을 따를 것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임금이기도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죠.

하나님의 선지자인 그가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야기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할지라(열왕기상 2장 3절)’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과 하나님의 인자하심, 그러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그분께 깊이 머리 조아려서 순종하며 살 것을 당부합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인생에게 있어서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고 지혜로운 일인 것을 그 아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뒤이어서 나오는 약속은 다윗이 하나님께 받은 약속입니다. 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 앞에 어떻게 순종하며 살았던지, 하나님이 다윗을 어찌나 사랑하시는지 그래서 ‘내가 너로 너의 왕위가 영영히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특별한 약속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러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나온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상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조차 햇볕과 비를 골고루 주시는 그러한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약속을 주시는,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신 거죠. 그래서 다윗에게는 ‘너에게 내가 모든 내 뜻을 가르쳐 주어서 내 뜻을 다 이루게 할 것이다’ 그렇게 약속하셨고 그것을 위해서 ‘내가 네 왕위가 영영히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고 약속으로 주십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그렇게 말하죠.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열왕기상 2장 4절)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와 너의 후손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특별한 약속, 은총이다’ 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마치 이런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믿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가나안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한 유업으로 줄 것이다’ 하고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이 그를 믿으니까 그것을 저의 의로 여기신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 모두에게 이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처럼,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특별한 약속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끝까지 순종한 믿음의 사람, 믿음이 증명된 순종은 믿음의 증명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시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들이 주어집니다.

솔로몬에게 다윗이 이러한 약속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이것이 착하고 충성됨입니다. 여기서 가감함이 있지 않죠. 다윗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산 삶에 대해서 그것을 증거해 주고, 과연 그렇게 살았고, 그것을 자기가 가진 것을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유업보다도 이것을 물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읽어본 이 말씀은 몇몇 가지 솔로몬이 왕으로서 공의로운 심판을 해야 될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5절 ~ 6절
스루야의 아들 요압 - 스루야는 다윗의 누나입니다. 스루야의 아들이 요압이죠. 다윗의 조캅니다. 이 조카가 다윗의 군대장관이예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이후로 요압이 다윗을 따라 다닙니다. 그래서 군대장관이 됐는데요, 이 사람이 잘못한 일이 있다는 거죠. 잘못한 일이 뭐냐?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일입니다.

넬의 아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장관으로 사울이 죽고 나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호위해 주는 군대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왕으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바로 다윗에게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사람들이 이스보셋을 옹립했지만, 이스보셋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신이 함께 하시는 왕권이 안 나타납니다. 그래서 아브넬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다윗에게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다윗에게로 돌아오려고 다윗에게 전갈을 보내니까 다윗이 ‘오라’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아브넬이 다윗 왕을 보러 왔습니다. 그런데 요압이 밖에 나갔다가 아브넬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을 만나고 돌아가는 아브넬을 만나 인사를 합니다. 어깨를 끌어안고 입 맞추며 인사를 하는 척하면서 칼을 허리에 집어넣어 옆구리를 찔러버립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냐 하면 사울집안과 다윗집안은 서로 원수 아닌 원수죠. 사실은 다윗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울의 시기를 받고 미워함을 받는 상황에 놓였었습니다. 그러니까 원수 아닌 원수처럼 대치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본 그 부하들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하나님을 순종하는 길이 무엇인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단지 자기 주인들의 입장을 따라서 서로 원수 노릇을 합니다.

그래서 사울 쪽에는 아브넬이 군대장관이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있고 그 수하에 장수들이 있습니다. 요압도 요압을 따르는 자기 형제들이 있고 그 수하에 장수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한번 만나서 무슨 짓을 했냐면, 서로 시비가 붙어서 “니네 애들하고 우리 애들하고 싸움 붙여보자” 하고서 12명을 뽑아가지고 서로 가까이 서서 서로 머리를 잡고 서로 잽싸게 칼로 찔러 죽이기를 했습니다. 누가 이기나 보자! 자기 부하들을 그렇게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졸지에 12명이 뽑혀나가서 줄지어놓고 칼로 찔러죽이니까 최소한 중상을 입든지 죽든지 그렇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자 요압의 동생 하나가 원수 갚으려고 아브넬을 뒤쫓아 갑니다. 아브넬에게 막 덤벼드니까 아브넬이 돌아보고 얘는 나이도 어리고 실력도 이 사람하고 견줄만한 것이 못되기 때문에 함부로 그 애를 향해서 칼을 휘두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너 그만 따라와라. 그러지 말아라. 내가 너를 해치면 너의 형 요압을 내가 어떻게 보겠느냐?” 하면서 따라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얘가 계속 따라가면서 칼질을 하고 창으로 찌르고 하니까 아브넬이 귀찮아서 창을 가지고 뒤로 휙~ 이렇게 하니까 얘가 그냥 창에 찔렸어요. 이런 과거지사가 있었어요. 이들의 인간적인 생각들 때문에 하지 말았어야 될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있었죠.

그렇다고 쳐도 그들은 그래봐야 일개 왕의 군대장관들입니다. 왕의 명령에 순종해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이 오라고 허락한 아브넬이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다 할지라도 그가 불의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울의 군대장관으로서 자기의 직분을 충실히 행한 사람입니다. 충성된 사람입니다. 그것밖에는 인간적인 죄가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브넬이라는 사람이 자기가 다윗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이스보셋을 죽이고 온다든지, 그들에게 함부로 한다든지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한 국민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그 길을 따르는 것일 뿐이지 누가 누구를 배신하고 누가 누구를 옹호하고 그런 것이 아닌 것이죠.

아브넬의 이러한 선택이 있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다윗이 받아들이고 오라고 하여 다윗과 만났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너 우리 집안 원수! 니 놈이 무슨 짓을 할려고 여기 나타났느냐? 그리고 내 형제들, 내 동생을 죽인 놈’ 이렇게 생각해서, 자기 자신이 가진 사사로운 개인 감정을 왕의 명령보다도 더 우선시해서 아브넬을 찔러 죽여버립니다.

또, 예델의 아들 아마사라는 사람은요, 엄마가 스루야의 동생입니다. 이종 형제간이예요. 아마사는 이종 형제간인데 둘 다 다윗이 외삼촌이 되죠. 그런데 아마사가 무슨 짓을 했느냐하면 압살롬이 왕권을 잡았을 때, 압살롬이 궤교를 베풀어서 많은 사람들을 끌고 가서 자기 진영에 참여하게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어떤 악한 마음을 품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참예하기도 했지만, 모르고 거기에 갔다가 같이 동참해 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압살롬이 아마사를 자기 군대장관으로 삼았습니다. ‘어?’ 하는 사이에 군대 장관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압살롬이 죽고 다윗이 돌아올 때, 다윗은 압살롬에게 동참한 사람들이 자기를 배반하기 위해 몹쓸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자기 죄로 말미암은 거죠. 다윗과 압살롬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도 다윗이 받아들인 죄 때문에, 자기가 받아들인 칼, 자기가 휘두른 칼, 그 칼의 유혹이 다윗에게 들어왔던 것이죠.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게 됐던 것은 사실은 그러한 유혹이 그 사람 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들어오고 나서 - 욕심 때문에 - 칼로 죽인 일이 있었죠? 그러니까 그 영적 존재가 그 집안에 들어온 것이죠. 그래서 그 집안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압살롬이 왕위를 빼앗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압니다. 다윗은 알아요. 그렇다고 해도 압살롬 자신도 잘하는 짓은 아니죠. 그 사람은 자기 욕심, 자기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받아들인 거죠. 왕자들이 많이 있어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받아들이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압살롬을 나중에 죽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어도 요압에게 당부해서 “내 아들 압살롬을 죽이지 마라. 제발 죽이지 마라. 아무리 자식이 잘못을 했어도 그 부모가 어떻게 자식이 죽는 것을 보겠느냐?” 아버지가 자기에게 잘못했다고 고의로 자식을 죽이겠어요? 그러니까 다윗이 못 죽이게 했지만 요압은 가서 죽여 버립니다. 창으로 찔러 죽이고 요압의 군사 열명이 가서 확~ 달려들어서 더 완전히 죽여 버립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전에 먼저 사람들을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서 ‘너희는 왜 다윗 왕이 다시 환궁하는데 와서 어서 오시라고 영접하지 않느냐?’ 하고 영접할 기회를 줍니다. 사람들 스스로가 모반을 하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있었으므로 그러한 위치에 서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다윗이 오면 괜히 자기들이 반역자 같고,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그러지도 않았고 그런 마음도 없었지만 서로 원수지간이 된 겁니다. 서로 모반을 꾀하는 그런 사이가 된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사람을 보내서 그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두려워 떨고 있고, 돌아서 있고, 오히려 죽임을 당할까봐 더 공격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을 막아주기 위해서 용서를 베푸는 겁니다. 관용을 베푸는 것이죠, 먼저 선수 쳐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워하지 않도록 유다 장로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고, 그 다음에 자기 조카 아마사를 부릅니다. 다윗은 군대장관, 이 사람의 중심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마사에게 ‘너도 나와서 왜 나를 영접하지 않느냐? 너는 사촌형 요압의 뒤를 이어서 - 요압이 나이도 많이 먹었으니까 - 니가 군대 장관이 될 놈이야. 그런데 왜 나오지 않느냐?’ 하고 초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그제서야 찌푸렸던 얼굴을 펴고, 두려움과 불안에 떨던 사람들이 낯을 펴고 다윗을 맞이하러 나옵니다. 다윗이 아마사에게 유대인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서 다윗임금이 왔으니까 나오라고 심부름을 시킵니다. 다 외쳐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 전부 나오라고 시킵니다. 그래서 아마사가 다윗에게 왔다가 심부름하러 갔습니다.

그런 사이에 이스라엘 나머지 지파에서 베냐민 세바라는 사람이 또 반역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에게 돌아서다가 또 세바에게 확 기울어 버립니다. 그런 반란이 일어나자 요압이 출동을 합니다. 요압이 출동해서 기브온쪽으로 나가려다가 아마사를 만났습니다. 아마사는 사촌형이니까, 다윗에게 환영도 받았으니까, 그리고 자기 형이 나오니까, ‘형님!’ 하고 인사하러 고개 숙이고 나옵니다. 그럴 때 요압이 자기 사촌동생인 아마사에게 역시 ‘그래! 너 잘 있었냐? 오랜만이다.’ 인사하는 척 하면서 아브넬을 죽인 것처럼 똑같은 방법으로 찔러 죽입니다. 인사하는 척하고 끌어안으면서 옆구리에 칼을 팍 찔러 넣는 식으로 죽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공의를 행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함부로 칼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왕이 명령하고 왕이 시행하려는 것에 대해서 요압은 어때요? 자기 옳은 생각, 요압은 ‘요놈! 너 압살롬한테 합세했던 놈이지! 씨를 말려야지!’ 하는 식으로 그를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앞으로 그가 군대장관이 될 사람이니까 자기 자리가 위태로워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무슨 이유 인지는 안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요압은 자기 옳다하는 생각, 자기가 가진 사사로운 인간적인 생각가지고 왕의 명령을 안 따릅니다. 왕이 아무리 자기네 외삼촌이긴 하지만, 왕을 왕으로서 인정하고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자기 옳은 생각으로 팍팍 처리해 버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얼마나 위험합니까? 자기 인간적인 생각가지고 열심은 있어요. 인간적인 열심가지고 열심은 내지만 그 명령을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인거죠.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그거 상관이 없어요.

다윗은 한 가지 한 가지를 하더라도,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더라도 그리스도 앞에서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사람입니다. 함부로 행하질 않아요. 그런 명령이 주어지고 있는데 이 요압은 그것을 무시해 버리고 자기 인간적인 생각가지고 팍팍 처리해 버린다 이 말이죠. 이런 사람은요, 왕 옆에서 군대장관을 하는 것이 군대장관으로서 왕을 호위해주고 나라를 강건하게 일으키고 받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나라를 짓밟고,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고, 그리스도의 뜻을 행할 수 없게 만드는, 그리스도의 공의로움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나갈 수 없도록 가로막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여러분, 부하가 되어서 왕의 뜻을 이루어주는 사람이 되려면 왕의 말을 액면그대로 철저하게 받아들여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왕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왕이 하나님의 뜻을 행할 경우에 왕을 통해 나가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함부로 여기는 겁니다. 요압 자기 자신은 다윗왕의 왕권을 철저하게 지켜주고 보장해 주기 위해서 이렇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죠. 이 요압이라는 사람이 무엇으로 행했는지, 요압이라는 사람이 무엇을 따라 행동했는지가 지금 나오잖아요.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할 때 아도니야 편에 서지 않습니까? 이것은 ‘다윗왕도 이제 늙고 힘없으니까 이제 내가 왕을 만들고 내가 왕이 될 사람을 이렇게 이렇게 할 것이다. 얼마든지 다윗왕도 필요하면 죽일 수 있다.’ 이런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없습니다. 참 무섭죠, 그죠?

솔로몬 왕에게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6절)’ 그러죠. 그가 태평한 시대에, 전쟁이 지나가고 평화가 오는 시대,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는 시대에 함부로 피를 흘리게 했다, 이 말이죠.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런 피가 아닌, 억울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겁니다. 억울한 사람의 억울한 피를 흘리게 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자연스럽게 이 사람에게로 돌아갑니다. 다윗이 이렇게 명령하지만 사실 이것은 죄가 죄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선을 행한 사람의 선도 그 사람을 찾아갑니다. 죄를 행한 그 사람도 죄가 그 사람을 찾아갑니다.

7절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길르앗 사람  바실래는 다윗 왕이 압살롬을 피해서 요단강을 건너서 길르앗 땅으로 갔을 때, 다윗의 심정이 - 정말 남도 아닌 자기 자식이 아버지의 왕의 자리를 빼앗고 아버지를 잡아 죽이려고 칼을 들고 쫒아올 때 이 사람이 얼마나 처절하겠습니까! 그리고 갈 곳이 없어요. 정말 더 이상 어디로 피합니까? 그래서 여기를 가면서 이 사람이 ‘내가 땅 끝까지 왔다’, 땅의 끝이란 뭐예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거기서 더 이상 죽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정말 가다 가다, 인생이 가다 가다, 정말 땅바닥을 기다 기다 정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그런 곳까지 갔다 하는 뜻입니다. 그러한 심정이였어요, 다윗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이 그렇게 곤고한 때에 이 길르앗 사람 바실래가 먹을 것을 해 가지고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종들을 데리고 와서 이 사람을 맞이합니다. 다윗 왕과 왕의 가족들과 왕의 부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영접합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인심이 기울어져 가는 사람들, 그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이런 인정을 베풀기가 쉽지 않아요, 그죠?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곤경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인정을 베풉니다, 바실래가. 이러한 것에 대해서 왕이 ‘이 은혜를 잊지 말아라’ 이 바실래는 다윗 왕과 친구처럼 지냅니다. 다윗은 왕이고 그는 백성이지만 다윗이라는 사람이 어떠한 그리스도인인가, 그가 얼마만한 하나님의 사람인가, 얼마나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인가가 드러나잖아요. 그러니까 후세나 이런 친구들이 참 많습니다. 어떻게 감히 일국의 큰 왕이 백성들과 친구처럼 교류하는 이런 사람이 됩니까? 다윗 왕이 이러한 사람입니다. 다윗 왕이 ‘가자, 우리가 이제 살아야 얼마나 사냐? 우리 같이 살자, 여생을 같이 살자’ 그러니까 바실래가 ‘나는 안 간다. 여기서 내가 나가봐야 뭐하겠느냐? 그러니까 내 아들들만 데려가라’ 고 그럽니다. 그래서 아들들을 데려갑니다. 데려온 바실래의 아들들에 대해서 다윗이 지금까지 자기의 상에서 먹게 했고,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도 왕의 상에서 먹게 해라 끝까지 은총을 베풀어라 은혜에 감사 보답을 해라 그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솔로몬을 앉혀놓고.

아버지가 죽었다고, 아버지가 어려운 일이 지나갔다고, 자식이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가졌던 모든 것, 아버지가 행했던 모든 것에 대해서 아들이 공경하고 있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했던 이러한 것들을 전부 아들이 물려받도록. 아들이 잔소리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확 집어치우고 내 맘대로, 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이렇게 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살지 않도록 그렇게, 그죠?
       
그 다음에 8절 ~ 9절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여러분 또 이제 그죠? 바후림 베냐민 사람 시므이.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서 갈 때 정말 곤고하고 신발도 못 신고 울며 울며 요단강을 건너갔습니다. 마하나임에서 그렇죠? 요단강을 그 부하들하고 건너갈 때 사울 집안사람 시므이가 돌 막 던지면서 침 뱉으면서 다윗을 조롱합니다. “너 이놈의 자식 우리 집안을 니가 말아 먹고 사울왕의 왕위를 니가 빼앗았으니까 이런 일을 당하지!” 막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죠. 이 사람들은 인간적인 생각가지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저주하고 그럽니다. 이렇게 했던 사람이예요. 부하들이 다윗 옆에서 너무 너무 속이 상하니까 ‘저 놈을 가서 칼로 그냥 콱 찔러 죽여버리겠다.’ 고 하니까 다윗이 못 죽이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범죄함으로 내가 낳은 내 자식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누가 나를 그렇게 안하겠느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용서하심, 구원의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나를 맡기겠다. 뭇 사람이 내 죄로 인해 나에게 저주를 하든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든지, 나에게 돌을 던지든지 그에 대해서는 함부로 하지 말아라” 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내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내게 다가온 시련, 하나님께서 나를 누르시는 손, 이것을 내가 받아들이겠다, 내가 받아들이도록 함부로 하지 말아라.

다윗은 이러한 자세가 있어요. 하나님 앞에서 잘 나갈 때는 잘 나가고,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으로 시련을 당해야 될 때,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런 상황을 함부로 대적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꼿꼿하게 다 받아들여요. 자기에게 고난을 주는 사람 ,욕하는 사람, 저주하는 사람, 돌 던지는 사람 다 받아들여버립니다. 자기의 구원은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시므이가 했던 것은 다윗에게 억울한 일이었죠. 시므이가 잘한 일이 아니죠. 하나님 앞에서 시므이는 시므이의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요압은 요압의 죄가 있습니다. 바실래의 아들은 하나님 앞에서 행한 선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다윗이 복귀되서 돌아올 때 시므이라는 사람이 잽싸게, 아주 얍쌉하게 얼른 와서 머리 조아리면서 ‘그때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제는 좋은 일이 생겼으니까 나한테 나를 칼로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소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다윗이 하나님한테 자기 자신이 용서를 받고 돌아오는 길이예요. 하나님의 자비를 받아서 돌아오는 길에 누구를 죽이겠어요.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않겠다’ 하고 그가 구하는 것을 줍니다. 그래서 그냥 시므이는 뭣도 모르고 좋다고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참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참으로 내가 잘못했다 이런 것을 가지고 다윗에게 돌아온 것이 아니죠. 요러한 사람들은 자기 속에 들어있는 자기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갑니다. 언젠가는 이것이 그대로 드러나고 언젠가는 이것 때문에 그 사람들이 망할 길로 갑니다.

여러분, 이 솔로몬에게 이런 일을 맡긴 것은 왕의 직무입니다. 왕의 직분으로서 이러한 일들을, 공의로운 심판을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때 율법을 따라서 심판을 했습니다. 잘잘못을 가려서 율법을 따라서 잘못한 것에 대해서 심판을 했습니다. 그러나 물론 하나님 앞에서도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다(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로마서 2장 6절) 행한 것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그랬습니다. 심판이 있습니다. 그죠?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심판이 없는 것이죠. 심판을 면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심판을 받지 아니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렇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뭐예요? 이러한 죄악을 가졌던 사람들, 이러한 모든 실수하고 범죄한 것을 가졌던 사람일지라도 용서가 있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가 이러한 모든 사람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범죄했던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주신 것이죠. 이 공로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은 사람,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는 사람들은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용서받았다는 것은 뭐예요? 더 이상 죄를 따라 살지 않겠다! 죄를 회개하고 버리는 것이죠. 그죠? 이러한 용서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 앞에서 우리에게 잘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솔로몬처럼 이렇게 해야 되느냐?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원수까지도 위해서 복을 빌어주라.(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장 44절) 예수 앞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윗처럼 이렇게 유언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원수에 대해서도 이전에는 그랬지만 그러나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고 심판하는 권세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히브리서 10장 30절) 사람에게 없습니다.

이 왕으로 보여지는 것은 심판하실 심판의 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내가 건축하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리니까 '니가 하지 말고 네 아들 솔로몬이 내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어요.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작 말씀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을 건축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거였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성전이 바로 우리 자신들이죠. 이 성전을 예수 그리스도가 건축하셨잖아요. 바로 이것을 말씀하신 거였고 바로 이 분은 영원한 심판주입니다. 온 세상을 심판할 심판주입니다. 그리고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구세주이시죠. 그래서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버린 사람들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장 24절) 이렇게 말씀하시죠.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자기 죄가 용서를 받았는데 누구, 자기한테 잘못하는 사람 누구의 죄를 물고 늘어질 겁니까? 내게 잘못한 사람 누구의 죄를 물고 늘어지겠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너희가 죄가 없어서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너희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용서해주라 너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으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14, 15절) 이 용서의 의미가 확실하죠?

이러한 용서를 받은 사람들, 솔로몬은 바로 이 왕권을 가지시고 영영한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두 가지 면이 있죠 그죠? 다윗과 같은 용서의 모습, 그 다음에 솔로몬이 공의로운 판결을 하는 모습. 이러한 것이 왕권을 가진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한쪽은 구주의 모습, 한쪽은 심판주의 모습.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너희가 원수 갚으려 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용서의 마음을 품어라!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5장 32절, 누가 뉘게 혐의 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장 13절)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해 주신 용서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내가 잘못한 것, 내가 범죄한 것, 내가 죄인으로 태어난 모든 것에 대해서,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용서가 되었다 말이죠. 예수께서 나 자신, 내가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셨다, 그래서 나는 용서를 받았다 말이죠. 내가 이들과 같이, 시므이와 같이 요압과 같이 그렇게 범죄한 자들이다. 그 심판을 받아야 될 자들이다. 어느 한 부분은 바실래의 아들처럼 그런 선을 행한 부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은 죄인이죠. 그죠? 이제 심판을 면할 길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용서로써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주신 용서를 주신 것이죠. 용서라는 것을 주신 겁니다. 내가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용서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 용서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라! 모든 사람에 대해서 용서하고 화평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이와 같이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 왜? 이와 같이 죄인인 나도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죄가 없어진 것이고, 하나님 앞에 죄 없는 의로운 사람으로 받아들여진 것이죠. 내가 잘해서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다.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렇죠?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용서할 자세를 가지는 것, 용서할 마음을 가져야 용서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용서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속에 용서가 있다 라는 것을 발견하셔야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용서하려고 하세요. 예수님이 나를 용서해서 용서를 가졌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여러분 속에 용서를 받았는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가지고 다른 사람들, 여러분 주변에서 잘못하는 사람들, 잘못한 사람들, 원수진 사람들, 상처 입힌 사람들,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마음으로부터 깊이 용서하세요. 주님의 용서를 가지고 용서하세요.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서 그리스도처럼, 다윗이 하나님께 맡기고 뭇 사람들을 대했듯이 그렇게 대하는 겁니다. 아시겠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용서가 있어 그것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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